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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0-02-2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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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절 · 그모습] 풍기 장날 이야기 1

사진과 글 배규택

기사입력 2019-12-1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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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8일이 풍기 장날이다

장날이라 해도 현재는 규모도 작고

예전처럼 그렇게 다양하지 못한 장이 열린다.

지금은 풍기 장날이 역전에 서는 것 같다.
 

 














내 어릴 적 풍기 장날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소전거리 돈을 한 다발 손에 움켜잡고 흥정을 붙이고

송아지를 사고파는 모습이 신기해서

눈을 반짝거리며 구경을 하면서

엄마와 이별하는 송아지의 애절한 울음소리에

소년의 눈가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기도 했다.
 

 

















집에서 키우던 돼지가 새끼를 낳고 닭들이 병아리를 치면

올망졸망한 자식들과 살아가려고 장날 돼지도 병아리도 사고팔던

우리 엄마의 억세고 고달프던 삶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물전 비린내 풍기는

생선과 멸치 냄새를 맡고 군침을 흘리며

한 참을 처다 보는 소년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우리 동네 고추장사 아저씨 고추전 가리에서

고추를 저울질 하시다가 나를 보시고

환하게 웃으시며 반가워하시던 모습도 떠오른다.

 

 



















선거철이면 싸전거리에서 국회의원 선거 유세하던

박용만 후보의 연설이 어린 동심에도

어찌 그렇게 재미나고 말도 잘하시던지

흥미진진해서 정신 놓고 연설을 듣기도 했다

 

소전거리, 닭 전거리, 어물전거리, 싸전거리, 나무전거리

또 그릇과 농기구 파는 가계도 있었고, 가마솥 파는 가계도 있었고

십자거리 만물상 영남사아저씨는 볼 때마다

언제나 담배를 입에 물고 계시던 모습도 기억난다.


 

아이스케키 공장, 강냉이 뻥튀기 아저씨

뻥이요소리에 귀를 막고 터질 때

달려가 부스러기 떨어지는 거 주워 먹기도 했다.

학생 모자 벗고 페이하시던 철용이 아저씨의

어눌한 목소리와 나만 다리 밑에 무서웠던 거지대장 아저씨

그리고 장날이면 어김없이 젖가슴 풀어 제치고

나타나시어 가계마다 얼굴 내밀던 강할매도 있었다.

장날이면 구경거리도 많고 신기한 것도 많아

한 바퀴 이것저것 구경을 하곤 했다.

 

전화번호가 31번이던 중국집 앞을 지날 때

코를 감미로운 향으로 유혹하는 짜장면 냄새

그때 나는 그 음식은 부자들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알았다.

한번도 먹어보지도 못했고 사 먹을 수도 없었기에

먹을 생각을 하지 못한 어린 시절이었다.

 

우리 할아버지 장에 다녀오시면 막걸리한잔 거하게 하시고

이 놈 택아손주 이름 다정히 부르며

까칠한 수염으로 볼을 비비시며 입에 넣어 주시던

눈깔사탕 하나 이렇게 할아버지의 사랑은 늘 달콤한 맛이었다.

할머니께서 고쟁이 속 비밀주머니에서 꼬기 꼬기 접어둔 돈을 꺼내

열 두마리 100원 하던 꽁치 한 묶음 사오시면

동생들과 둘러 앉아 꿀맛으로 먹던 꽁당보리밥

그 행복하고 소박하던 밥상이 그립다.

 

그 시절 장날은 풍성했다.

정겨운 인심이 보이고 따스한 인정이 흘렀다.

억세고 시끄러운 풍기 사투리가 튕겨 하늘을 날아다닌다.

아이고 아지매 오랜마이씨더

장에 오신니껴

반갑기도 무세레이 아제는 우에 그리 보기 힘드니껴

그 케 말이씨더 이래 장에 나와야 보니더 왜

그동안 별고 업선니껴

.

.

사진과 글 배규택

 

영주인터넷뉴스 (iybc365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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