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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0-08-1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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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톡톡] 추녀 무염의 간언을 받아들인 제선왕의 아량과 용기

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기사입력 2020-07-29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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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언(忠言)은 주로 왕조시대에 많이 쓰이던 말인데 요즘 말로 하면 합리적 의견 개진, 합리적 대안 제시 정도로 말하면 쉽게 이해될 수가 있겠다. 이러한 충언을 받아들이면 흥성하고 충언을 물리치면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될 수밖에 없다는 실례를 우리는 역사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아래에 제시하는 무염(無鹽)의 고사는 충언을 가납(嘉納)한 실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천한 신분에다 짝이 없을 정도로 추악한 용모에 더군다나 여성의 충언을 일국의 제왕(帝王)이 가납한 사례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조건이 열악(劣惡)한 사람의 말은 그 말의 합리성 여부를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돌 속에 박힌 옥은 알아보지 못하고 돌이라는 겉만 보고 내버리다 못해 그 옥을 바친 사람의 발꿈치까지 베어버린 화씨벽(和氏璧)*이란 고사처럼 어리석음을 범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박옥(璞玉)을 얻어 초나라 여왕(厲王)에게 올리니 여왕이 옥공(玉工)을 시켜 감정하게 하였다. 옥공이 돌이라고 하니 속았다고 여긴 여왕은 변화의 좌족(左足)을 베어 버렸다. 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변화가 또 박옥을 올렸다. 무왕이 옥공을 시켜 감정하게 하였는데 또 돌이라는 옥공의 말을 듣고 그 우족(右足)마저 베어 버렸다. 그 후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가 박옥을 안고 형산 아래에서 통곡하니 문왕이 사람을 보내 그 연유를 물었다. 변화가 말하기를 보옥을 돌이라 하고 정직한 선비를 간사한 자라고 하니 그것이 슬퍼서 그런다.” 하였다. 왕이 마침내 옥공을 시켜 박옥을 쪼개 보니 과연 진귀한 보옥이 나오므로 드디어 화씨벽(和氏璧)이라 이름 붙였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현상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본질을 파악해낼 수 있는 지혜의 안목과 능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정치가 발달한 민주국가에서도 무염의 고사처럼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고 오히려 화씨벽과 같은 실수를 하기가 쉬운데 하물며 고대에, 그것도 절대군주의 왕조시대에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선뜻 믿기지 않는다. 이제 무염(無鹽)의 고사로 들어가 보자.

 

한나라 유향(劉向)이 지은 '열녀전(列女傳)'6 변통(辯通)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그 대략을 보이면 아래와 같다. 무염(無鹽)은 본디 중국 산동(山東) 동평현(東平縣) 동쪽에 위치한 전국 시대 제()나라의 지명인데 후대에는 이곳 출신인 종리춘(鍾離春)이란 여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무염은 전국 시대 제선왕(齊宣王)의 정부인이 되어 정사에 협조하여 나라를 크게 안정시켰는데 이 여인은 그 모습이 아주 추하여 후대에는 추녀(醜女)의 대명사가 되었다. 제나라 선왕이 일찍이 질탕한 잔치를 벌이고 있을 적에 아주 추하게 생긴 여인이 궁궐 출입문에 나타나서 나는 무염 지방 출신의 종리춘이라 한다.

 

나는 나이 마흔이 넘었건만 아직 시집을 못 갔다. 나는 장차 후궁(後宮)에 거처하면서 대왕을 섬길 작정이다.”라고 하였다. 제나라 선왕이 그 추녀를 만나 보자 추녀는 눈을 치뜨고 입술 사이로 이를 드러내 보이고 두 손을 들더니 무릎을 탁탁 치면서 위태롭고 위태롭구나.’라고 외쳤다.

 

제나라 선왕이 무슨 뜻인지 자세히 말하라고 하자 추녀는 ()나라는 위앙(衛鞅)을 등용하여 재정과 군사를 증강하고 머지않아 함곡관(函谷關) 밖으로 군사를 움직여 우리 제나라를 위협하려고 하는데 대왕께선 좋은 장수를 양성하지 않고 변방의 방비에도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제가 왕을 대신해 눈을 치떠 저 흉악한 진나라를 쳐다본 것입니다. 또 대왕께선 안으론 여색(女色)에 빠지고 밖으론 정사를 돌보지 않으며 시비와 흑백을 따지는 충신들을 내쫓고 간신들에 둘러싸여 계십니다. 그러므로 제가 임금을 대신해서 충언을 간하는 신하들의 말을 받아들이게 하고자 이[]를 내보여 웃은 것입니다. 또 대왕께선 천하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황당무계한 괴변을 일삼는 유세객(遊說客)들만 모아 놓고 그들과 어울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제가 대왕을 대신해서 그들을 내쫓고자 두 손을 든 것입니다. 또 왕께서는 넓은 동산을 만들고 화려한 누대(樓臺)를 쌓고 못을 팠기 때문에 백성들은 지칠 대로 지쳤으며 나라의 재정은 텅텅 비었습니다. 그러므로 첩이 왕을 대신하여 무릎을 탁탁 쳐 그 호화로운 모든 것들을 다 무너뜨려 버린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추녀의 말을 들은 제나라 선왕은 즉시 잔치를 파하였으며 이후 잔치를 금하고 사냥을 줄이고 쓸데없는 유세객들을 모두 내쫓아 버리고 백성의 살림을 걱정하고 군사를 강병으로 양성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는 내용이다.

 

너무나 추한 외모에다 비천한 신분의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제기하는 소위 사태(四殆)’의 간언(諫言)을 귀담아들을 수 있는 지도자의 아량과 용기에서 제나라의 융성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과거 왕조시대의 충언은 오늘날로 보면 일종의 합리적 여론(輿論)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로 여론이라고 언제나 합리적이거나 옳지는 않으므로 합리적 여론이라고 표현하였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의 과거 역사를 돌이켜보면 충언을 들어서 흥성하고 충언을 물리쳐서 조직이나 나라가 기울거나 패망한 사례는 부지기수로 찾아볼 수 있다. 어찌 나라의 지도자만 그러하겠는가? 모든 조직이나 단체의 책임자가 된 사람뿐만 아니라 한 개인이라도 위에서 예로 든 제나라 선왕과 무염의 고사, 화씨벽의 고사를 깊이깊이 새겨서 반드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좋은 약은 입에는 쓰나 병에는 이롭고 충언은 귀에는 거슬리나 행동에는 이롭다.(良藥苦於口而利於病이요忠言逆於耳而利於行이라)라는 말도 아울러 유념할 필요가 있다. 너와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오래도록 존재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요구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경북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김소영기자 (iybc365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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